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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에서 배신자로... 북베트남과 북한의 충격적인 관계 변화, 그 뒤에 숨겨진 진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만 참전한 것이 아니라 북한도 북베트남에 군사 지원을 했다는 점이다. 도미엔의 '붉은 혈맹'에 따르면, 북한과 북베트남은 형제국가라 할 만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북한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도 북베트남과 수교했으며, 1957년 호찌민이 북한을, 1958년에는 김일성이 북베트남을 방문하며 반미 연대를 다졌다.
베트남전이 격화되자 두 나라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1964년 미국의 북베트남 폭격이 시작된 위험한 시기에 김일성이 북베트남을 방문했고, 이듬해 북한은 1200만 루블에 달하는 물자와 자금을 무상 지원했다. 1966년 또는 1967년부터는 전투기 조종사 96명을 포함한 공군 병력까지 파견했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미온적이었고, 중국은 북베트남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던 상황에서 북한의 이러한 지원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연대의 원동력이 순수한 '사회주의 형제애'만은 아니었다. 북한은 북베트남 지원을 통해 소련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비서구 국가들에게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또한 김일성은 이를 통해 유일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궁극적으로는 북베트남의 게릴라 전술을 모방한 '남조선 혁명'을 완수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점차 소원해졌다. 1968년 1월, 북한이 미국 군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했을 때 북베트남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베트남전에 대한 세계 여론이 중요한 시기에 북한이 관심을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북한이 베트남 통일 소식을 자국 방송에서 언급하는 것을 꺼렸다. 한반도 분단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베트남의 통일은 북한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국제 관계에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현실주의적 교훈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베트남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김일성의 계산과 별개로, 북베트남의 '열사' 응우옌반쪼이를 추모했던 북한 노동자들의 연대 의식은 진정성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념적 논쟁이 아니라, 한반도와 베트남, 그리고 지금의 우크라이나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다. 저 멀리 있는 전쟁이 언제든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연결'의 감각이야말로 베트남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공통된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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